방산이 스타트업의 시장이 된 것은 기술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전쟁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공식 정책 문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기부와 방위사업청은 2026년 2월 발표에서 디펜스테크를 별도 육성 대상으로 선언하며, 스타트업 100개와 고성장 벤처 30개 육성 목표를 제시했다. 같은 문서는 미국과 유럽에서 Shield AI, Anduril, Palantir 같은 회사들이 민간 기술을 군 작전에 빠르게 적응시키는 흐름을 언급하며, 현대전에서 AI·자율·데이터 플랫폼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건 단순한 산업 육성 슬로건이 아니다. 국가가 이제 “좋은 기술이 있으면 언젠가 군이 쓸 것”이 아니라, 군이 빨리 써야 하므로 스타트업을 직접 끌어들여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돈이 붙는 곳은 무기보다 소프트웨어와 자율성이다
글로벌 자금 흐름도 같은 방향이다. Reuters에 따르면 미국 방산 AI 회사 Shield AI는 2026년 3월 20억달러를 조달하며 127억달러 가치 평가를 받았고, 자율 비행 소프트웨어 Hivemind는 GPS가 끊긴 환경에서도 항공기와 드론을 운용하도록 설계돼 있다. 같은 주에 Reuters는 자율 선박 스타트업 Saronic이 17억5000만달러를 조달해 92억5000만달러 가치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방산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이 치솟는 이유는 총알을 더 많이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자율성·시뮬레이션·소프트웨어가 전장 운영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디펜스테크가 진짜 올라타려는 시장도 바로 이 구간이다.
한국도 스타트업을 부르기 시작했지만, 아직 시장보다 정책의 목소리가 더 크다
한국 정책은 꽤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다. 공식 로드맵에는 군·대기업·스타트업을 연결하는 Defense Startup Challenge, 드론·로보틱스·AI 분야의 제안형 획득 트랙, 군 데이터 접근을 돕는 Defense AX Hubs, 보안 기준 지원, 국방 특화 대학과 창업 연계까지 포함됐다. 즉 정부는 이미 디펜스테크의 병목이 기술 개발보다 조달 진입, 데이터 접근, 보안 규정, 검증 기회 부족에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지금 한국 디펜스테크의 성장 엔진은 아직 민간 수요보다 정책 설계가 더 크게 돌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이 지금 막 만들고 있는 것은 시장 자체라기보다, 시장이 생기기 위한 관문 구조다.
그래서 한국 디펜스테크의 진짜 분기점은 투자유치가 아니라 조달 편입이다
최근 사례들은 이 시장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공식 로드맵은 Nearthlab, Pablo Air, GenGen AI를 국내 듀얼유즈 기술 사례로 직접 언급했다. 실제로 Nearthlab은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 중이고, Pablo Air는 2026년 1월 대한항공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받았으며, GenGen AI는 2025년 KAI가 약 6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가 됐다는 보도가 있다. 또 Meissa는 2025년 말 97억원 규모 프리IPO를 유치했고 KAI가 누적 80억원을 투자한 2대 주주로서 위성·디지털트윈·방산 소프트웨어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 회사들은 소비자 서비스를 키우는 방식이 아니라, 대기업·군·조달 체계 안으로 들어가며 스케일을 만든다. 디펜스테크에서 투자 라운드는 시작점일 뿐이고, 진짜 관문은 조달 편입이다.
한국 VC가 이 시장에 끌리는 이유도 결국 ‘긴 기술’이 아니라 ‘확실한 구매자’ 때문이다
딥테크 전반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첫 고객이다. 그런데 디펜스테크는 그 첫 고객이 불분명한 시장이 아니다. 국가, 군, 방산 대기업, 그리고 동맹국 조달 체계가 모두 잠재 수요자가 된다. 서울경제는 한국스타트업포럼이 디펜스테크 협의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올해 국제방산전시회 스타트업관이 2년 전 15개 부스에서 40개 부스로 늘었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행사 확대가 아니라, VC와 스타트업이 이제 이 분야를 “너무 느린 공공시장”이 아니라 수요가 현실화되는 시장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글로벌에서 Shield AI와 Saronic 같은 회사들이 보여준 것은, 전쟁이 커질수록 좋은 기술보다 빠르게 발주를 탈 수 있는 기술이 더 비싸진다는 사실이다.
다만 한국이 쉽게 착각하는 것도 있다. 정책 관심이 곧 시장의 자생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한국 디펜스테크의 날카로운 이면이 나온다. 정부가 길을 열고, 대기업이 투자하고, VC가 관심을 보이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는 미국처럼 대규모 국방 소프트웨어 발주가 반복적으로 열리거나,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실전이 시장 검증을 강하게 밀어주는 구조가 없다. Reuters Breakingviews는 유럽 디펜스테크 붐조차 실제 발주가 늦어지면 유망 스타트업이 도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가장 큰 리스크는 기술 부족이 아니라, 조달은 느리고 스타트업은 빠른 시간 구조의 충돌이다. 그래서 한국 디펜스테크의 진짜 문제는 “할 수 있는 기술이 있는가”보다, 그 기술을 군과 정부가 스타트업의 속도로 사줄 수 있는가에 더 가깝다.
DIM의 해석
한국 디펜스테크는 유행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직 완성된 시장도 아니다. 지금 이 분야가 뜨거운 이유는 전쟁이 갑자기 가깝게 느껴져서가 아니라, 안보가 이제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스타트업의 문제로도 다시 설계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Nearthlab, Pablo Air, GenGen AI, Meissa 같은 회사들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신기술이 아니다. 이들은 군이 필요한 문제를 스타트업의 속도로 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이 시장의 승부는 기술력만으로 나지 않는다. 결국 강한 회사는 드론을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군의 시간을 줄이고 조달의 언어를 이해하며 대기업과 국가 예산을 자기 성장 경로로 연결할 수 있는 회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디펜스테크의 본체는 방산의 변두리가 아니라, 전쟁이 다시 쓰는 스타트업 시장이다.